좌석 7의 발라드 — 은둔자의 생존 전략은 실패로 끝나다
어제 시계탑에서 처음 해본 커스텀 스크립트 '좌석 7의 발라드'. 은둔자로 시작해서 '그냥 내가 은둔자니까 날 죽여달라'고 공개했지만 아무도 안 믿어줬다. 결국 악팀 승리. 투명인간 동수와 함께한 10인 게임 후기.
어제 시계탑에서 흐른피 모임에 다녀왔다. 이번에 돌린 스크립트는 좌석 7의 발라드(Ballad of Seat 7). 나도 처음 해보는 스크립트였다.
10인 게임에 사회자가 별도로 있었다. 참여자는 9명. 나머지 한 자리는? 투명인간 ‘동수’였다. 말도 못 하고 표정도 없는 가상의 인물인데, 자리가 있고 사회자가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설정이다. 다들 이 투명인간을 “동수”라고 부르면서 진행했다. 이런 장치도 신기방기했다.
은둔자, 그리고 자폭 선언
첫날밤, 내가 받은 직업은 은둔자였다. 선팀이지만 악팀으로 조회되는 역할. 능력이라고는 그게 전부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살아있어 봤자 악팀으로 오인될 가능성만 높은 직업.
그래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그냥 공개하고 처형당하자.”
정보직도 아니고, 죽어도 선팀에 큰 타격은 없다. 다만 살아있을 때의 투표권이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오히려 내가 살아서 악팀으로 몰려 선팀의 투표를 분산시키는 게 더 손해라고 판단했다.
둘째 날 낮, 밀담 시간에도 다들 서로를 못 믿는 분위기였다. 전체 토론 때 나는 그냥 말했다.
“저 은둔자예요. 그냥 날 죽여주세요.”
그런데 사람들이 안 믿는 거다. 이유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 “은둔자를 왜 굳이 처형해? 살려둬도 상관없잖아.”
- “쟤가 사실 폭탄마면? 악팀 유리하게 만들려는 거 아냐?”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폭탄마인데 은둔자인 척 자살하려는 거라면?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결국 첫 처형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선팀이었다. 아깝지만, 이게 시계탑이다.
악마는 나를 죽이지 않는다
둘째 날 밤, 악마가 다른 시민을 죽였다. 이때 깨달았다.
“아, 내가 전체 공개를 해버렸으니 악마가 나를 죽일 리가 없구나.”
악마 입장에서는 은둔자가 살아있을수록 좋다. 악팀으로 조회되니 선팀의 의심을 분산시켜주는 존재니까. 오히려 나를 죽이면 선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 그래서 악마는 나 대신 정말 위협적인 정보직을 노릴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내가 중요한 정보직인 척 위장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이었을 거다. 그래야 악마가 나를 먼저 죽이려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판은 이미 공개해버렸으니 그냥 쭉 가기로 했다.
이방인의 수가 이상하다
10인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방인이 0명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은둔자(이방인)로 나왔고, 다른 누군가가 성자(이방인)라고 주장했다. 이방인이 2명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알고 보니 열기구 조종사가 마을주민에 포함되어 있었다. 열기구 조종사는 이방인을 +1명 추가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실제 이방인은 1명(나, 은둔자)이고, 성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탕녀(하수인)가 성자인 척 위장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게임 끝날 때까지 이걸 몰랐다. 남작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 진짜 혼란스럽다.
게다가 누군가 계속 다른 사람을 몰아가는 패턴이 보였다. 하피 하수인의 특징이다. 그래서 이번 판의 악팀 구성은 악마 + 탕녀 + 하피였던 셈이다.
아무도 죽지 않은 밤
셋째 날 밤이 지났다. 그런데 아침에 확인하니 죽은 사람이 0명.
“어…?”
다들 당황했다. 악마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은 건가? 아니면 무언가 능력으로 막은 건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동수의 최후
그러다 넷째 날인가, 투명인간 동수가 처형대에 올랐다. 그런데 동수가 처형되자마자 갑자기 다른 2명이 동시에 사망했다.
“동수가 하피였고, 저 2명은 선팀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피가 죽으면 자신이 모함한 상대도 같이 죽는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진실은 달랐다.
하피가 자기 자신에게 모함을 걸었던 것이다. 본인은 계속 마술사라고 주장했는데, 그땐 그냥 마술사인 줄 알았다. 픽시인 줄은 전혀 몰랐다. 하피가 스스로에게 모함을 걸고, 자신을 처형시켜서 그 모함에 걸린 사람들(선팀)을 같이 죽이겠다는 계산이었던 거다. 이걸 왜 몰랐을까.
마지막 5인
게임 막바지, 5명이 남았다.
- 성자 — 근데 알고 보니 탕녀였고
- 예언자 — 근데 알고 보니 임프(악마)였고
- 나(은둔자) — 진짜 은둔자
- 낚시꾼 — 선팀
- 여관주인 — 선팀
선팀 3명, 악팀 2명. 그런데 이때 결정적인 밤이 찾아왔다.
예언자(임프)가 스스로를 지목해서 죽었다. 임프가 자기 자신을 죽이면 하수인에게 악마 자리가 넘어간다. 즉 탕녀가 새로운 악마가 된 것.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왜 여관주인이 예언자를 안 지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관주인은 밤에 한 명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정보직으로 보이는 예언자를 지키지 않은 거다. 이미 예언자는 임프였으니 결과적으로는 상관없었지만,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다음 날 낮, 결국 여관주인이 처형대에 올랐다. 본인은 선팀이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악팀 승리. 게임 종료.
돌아보며
은둔자로 “그냥 나 죽여줘” 전략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아무도 안 믿어줬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더 의심하게 만드는 역효과만 났다.
그리고 남작인 줄 알았던 캐릭터가 알고 보니 탕녀였고, 이방인이 1명이었던 이유는 열기구 조종사(+1) 하나 때문이었다. 남작이 없으니 기본 0명인데, 열기구 조종사로 인해 이방인이 1명 생긴 거였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도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다니, 하… 진짜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게 시계탑의 묘미다. 완벽한 전략 같은 건 없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한 최선의 플레이가 누군가에게는 의심스러운 행동이 되고, 그 의심이 또 다른 추리의 실마리가 된다. 매번 할 때마다 스토리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재미. 그걸 즐길 수 있다는 게 시계탑을 계속 하게 되는 이유다.
좌석 7의 발라드는 이방인 관련 상호작용이 특히 재미있었다. 투명인간 동수라는 설정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자기가 자기에게 모함 건 하피의 플레이는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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